본문 바로가기

발칸반도, 러시아 분쟁, 분리독립, 소련 역사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

2차 세계대전이 다시 발생하자, 북부지역은 독일이 관할하게 되고 남부지역은 옆에 있던 이탈리아가 관할하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생각해보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던 곳이다 보니, 히틀러는 우스타샤 집단을 지원해줍니다. 이는 크로아티아계 파시스트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스타샤는 가톨릭 중심이고, 크로아티아인 중심이다 보니 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인종 청소 단계까지 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스타샤 정권이 발칸반도 지역을 관할하면서 자신들이 싫어했던 세르비아인이나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합니다. 세르비아계는 크로아티아계에 대해 매우 큰 반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움이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자, 왕국을 다시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변환시키면서 하나의 국가로 그대로 다시 만들어집니다. 이를 만들어낸 사람은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티토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름 많은 지역에 대해 탕평책을 써가며 작은 공화국들을 모두 묶어내기 시작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고, 이름은 나중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바뀝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왕이 사라지고 대통령이 있는 공화국 형태로 해서 여전히 하나의 묶음으로 공화국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합니다. 이들은 여태껏 미움을 쌓아오기는 했으나, 대통령이 리더십이 강하고 주민들의 불만 해소에 있어서 열심히 나섰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자신들의 불만을 누르고 국가를 형성하여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자는 마음으로 국가가 어느 정도 운영됩니다.

유고슬라비아 민주화 운동

대통령이 토지개혁도 하고, 집단 농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6개의 공화국에 자치권을 많이 주게 되어, 연방정부의 간섭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불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티토 대통령이 1980년에 사망하고, 티토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1980년대에 들어가면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썩 나은 체제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동유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이 벌어집니다. 이 바람이 같이 발칸 반도에 내려오게 되어 우리의 체제가 좋은 체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금 사회주의 연방으로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민주주의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연방에서 나갈 때 민족국가를 형성해야지 하는 마음에 1980년대에 민족주의가 발응 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 발칸반도에 민족주의가 발응 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로 1991년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연방에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반역이었기 때문에 연방정부에서는 이곳에서 내전을 벌이게 됩니다. 슬로베니아는 1991년 6월에 독립 선언을 했는데 그해 10월에 연방군대가 철수하며 독립을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이렇게 끝났을 수도 있었을 법했지만, 크로아티아 안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계 사람들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왕국이었을 때에도 세르비아계가 중심이었고,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었는데 크로아티아계 사람들만이 독립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싸우게 되는 내전이 발발하게 되고, 이 내전이 4년여간 지속합니다. 이것이 제1차 유고 대전이라고 불리는 내전입니다. 하지만 1995년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독립하여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 남쪽에 있었던 마케도니아는 그해 9월에 독립선언을 하며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6개의 공화국이었는데 3개가 빠져나가고 3개만 남은 상황으로 되었습니다. 내전이 복잡하게 일어났었던, 그리고 치열하게 일어났었던 곳이 바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제가 앞에서도 짚어드렸는데, 그들은 자기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고 여러 민족이 모여서 살고 있던 다민족 공화국입니다. 이곳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세르비아계 중에서도 이슬람으로 전향한 사람들은 자신을 보스니아인으로 칭합니다. 이들이 보스니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을 믿는 세르비아계가 40% 넘게 존재하고, 그리스 정교를 그대로 믿고 있던 세르비아계가 30% 정도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가 20% 정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지배계층으로 올라선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 세르비아계입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들은 우리도 같은 세르비아계 인인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를 홀대하네 라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인들이 이들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됩니다. 1991년에 이미 독립을 한 국가가 생기면서, 1992년에 세르비아계가 '우리도 독립할 것이다'라고 독립 선포를 합니다. 그런데 이 세르비아계는 그리스 정교를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보스니아인들은 이들이 원했던 독립 방법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독립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크로아티아계와 함께 우리의 방식으로 독립을 하자고며 이를 국민투표에 붙여버립니다. 조금 더 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독립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국민투표를 시행했는데, 동방정교를 믿던 세르비아계들은 '이 투표는 옳은 방식이 아니야'라고 하며 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끼리 치른 독립투표에서 우리는 연방에서 빠지는 것을 가결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1992년 4월에 유고연방에서 독립합니다. 유고연방에서 독립했는데, 연방 정부에서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국토가 작아졌다는 생각과 왜 독립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방정교를 믿던 세르비아계도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반발을 합니다. 그래서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에게 연방정부가 도움을 주며 내전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스니아 내전이고 제2차 유고 내전입니다.

내전의 흐름

내전 초기에는 연방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계가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여태껏 자신들이 받았던 핍박을 인종청소를 하며 해소합니다. 보스니아계 마을을 폭격한다든지, 사람을 죽이는 무자비한 일을 벌이게 되며 UN이 평화 유지군을 파병하게 되고, 결국 UN의 개입하에 유고연방 크로아티아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내전이 종식됩니다. 현재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국가라는 것을 형성하여 이슬람과 크로아티아계가 하나의 연방을 가지고 있고,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하나의 연방을 가지고 1국 2 체제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6년이 되면 몬테네그로도 독립을 하여 나가고, 세르비아가 혼자 남아 연방이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유고연방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 시기가 2006년입니다. 여기까지 해서 유고연방이 끝났느냐 하면 여기에 대해 다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발칸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 곳은 코소보입니다. 코소보를 이해하시려면 알바니아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리 리아인들이 예전부터 발칸반도에서 살고 있었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게르만족이 들어오고 슬라브족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렇게 일리 리아인들은 점점 밀려 알바니아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알바니아인들은 일리 리아인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예전에 비잔틴의 세력이기도 했으나, 세르비아 왕국으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스 정교 수도원이 많아서 세르비아인들 사이에서 민족의 성지와 같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와 이 지역을 점령하고 나서 오스만의 중심에 가까운 코소보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합니다. 개종하지 않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쪽에 보이보디나라는 지역으로 이주를 해버리고, 이 빈 땅에는 바로 밑에 있던 알바니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를 오스만 제국이 굉장히 장려했습니다. 코소보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살고, 개종해서 들어가면 땅을 준다며 알바니아 사람들을 몰아붙였습니다. 이로 인해 알바니아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코소보에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하여 늘어나게 됩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알바니아인이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민족의 성지였으나 알바니아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이곳도 1980년대에 민족주의가 발칸반도에 남아있을 때,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스스로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아니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알바니아계의 독립을 요구하지만, 세르비아 측에서는 강경하게 이를 진압하고 1980년대 말에 자치권을 박탈해버립니다. 자치권을 박탈당했을 때 그곳에서 가만히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코소보에 있는 사람들은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을 계속하여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1991년에는 내전도 벌어지고, 이곳저곳에서 독립도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코소보 공화국을 선포해버립니다. 이때, 내전을 하던 중이었든 연방 정부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코소보에 있었던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아예 코소보 해방군이라는 병력 조직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속적인 충돌

세르비아 정부에서는 코소보 해방군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고자 했으나,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NATO에서 1998년에 코소보에 개입하고, 이 개입 이후 내전이 종료됩니다. 내전이 종료되면서 세르비아에서 파병했었던 군인들은 철수하고, UN 평화유지군이 이곳에 주둔합니다. 2000년이 되면 UN군이 이곳을 지켜주고 코소보는 UN의 보호령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2008년에 드디어 코소보는 코소보 공화국으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르비아와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몇몇 국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소보는 자신들이 독립된 공화국이라고 지속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코소보 바로 밑에 있던 마케도니아는 우려의 시선으로 코소보를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케도니아에도 알바니아계가 일정 부분, 1/4 정도 살고 있습니다. 코소보가 독립하여 나가고 바로 밑에 알바니아가 있으면 코소보와 알바니아가 한 편이 되고 마케도니아에 있었던 알바니아계가 합류하면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시선으로 코소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칸반도에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은 여러 국가가 모여 하나의 연방을 만들었으나, 결국에는 민족과 종교에 따라서 다 쪼개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분쟁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코소보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분리되어 나온 공화국들도 평화롭게 국가가 운영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