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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러시아 분쟁, 분리독립, 소련 역사

그리스계 주민의 에노시스 운동과 독립, 남북 갈등

그리스계 주민의 에너시스 운동과 독립, 남북 갈등

그리스계 주민의 에너시스 운동과 독립, 남북 갈등
그리스계 주민의 에너시스 운동과 독립, 남북 갈등

키프로스의 그리스인 입장에서는 예전에 오스만이 지배를 했으나 이제는 영국이 와서 지배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스와 합병을 위한 운동을 벌입니다. 이 운동을 에노시스 운동이라 부릅니다. 에노시스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합병을 뜻합니다. 키프로스에 사는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합쳐지고 싶다는 민족적인 염원을 담은 운동이었습니다. 영국이 지배하고 있을 때 반영 민족운동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에노시스 운동을 하는 집단에서 1950년대 중반에 들어가면 무력투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키프로스 민족해방조직이라는 무력 조직을 결성해서 영국에 대해 무력투쟁을 합니다. 영국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면 자신들의 식민지를 밖으로 다 독립시켜버리는데, 이 와중에 키프로스도 독립하게 됩니다. 1959년에 영국이 키프로스를 독립시킬 때 같이 협정을 맺은 주체가 그리스와 터키입니다. 키프로스에는 그리스인과 터키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세 국가가 모여서 키프로스의 독립을 합의합니다. 1960년에는 키프로스 공화국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키프로스가 독립국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인구의 절대다수가 그리스계였다 보니 독립한 새로운 국가에서도 주축은 그리스계가 됩니다. 거기에다 대통령은 에노시스 운동을 이끌었던 마카리오스 3세 대주교가 됩니다. 터키계는 이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맺었던 협정에 따라 터키계도 정치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갈등

공직의 일정 부분은 터키계에 할당하게 만들어 놓는 등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으나, 그리스계가 정부의 다수를 차지했고, 이에 대해 터키인들은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계가 다수인 정권하에서 터키계를 몰아내려 하는 시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지속해서 갈등을 보이게 되고 산발적으로 무력적인 다툼이 일어납니다. 결국 터키계 주민들이 의회나 정부를 보이콧해버리게 됩니다. 터키계 주민들도 반발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무력투쟁이 발생하자 키프로스 정부는 1964년에 UN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합니다. 대통령은 그리스계였으나 부통령은 터키계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터키계 부통령도 더는 이러한 생활은 어렵겠다는 판단하에 분할안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할안에 대해 터키가 지지해줍니다. 터키는 분할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터키계를 추동합니다. 터키와 그리스는 원래 사이가 좋은 국가들은 아니었습니다. 에게해 지역에서 1973년에 터키와 그리스가 영토 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키프로스에 사는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게 되고, 1974년이 되면 게릴라 조직이 정부를 정복하려고 시도합니다. 게릴라 지역은 터키계가 아닌 그리스계로 현재 정권이 너무 유하다며 강경하게 나가야 하는 입장을 취하며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이 쿠데타를 확인한 터키계들은 이것이 성공한다면 본인들이 더욱 눌려 살게 될 것을 예상하고, 쿠데타가 외부의 힘을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터키계 지도자들이 외부의 군사개입을 요청합니다. 키프로스의 쿠데타가 발생했으니, 진압해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 기회를 타서 들어온 국가가 터키입니다. 터키가 터키군 4만여 명을 끌고 키프로스의 북부에 있는 항구에 정박을 하게 되고, 이 항구를 시작으로 점점 내륙으로 들어와 키프로스의 중앙부를 장악합니다. 이 쿠데타는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따라서 돌아가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터키군은 철군을 거부합니다. 쿠데타는 끝났을지 모르나 이곳의 터키계 사람들을 지켜줘야 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철군을 거부합니다.

UN에 중재 요청

키프로스 정부는 UN에 중재를 요청합니다. 철군도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왜 터키군이 들어와 있냐며 내쫓아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해보자며 UN을 끌어들여 중재를 하게 되는데 합의에 실패합니다. 터키에서 원한 것은 하나의 국가이지만 체제를 둘로 쪼개 연방 형태로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원한 것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지고 있고 두 개가 아니라 지역별로 나눠서 다지역 연방제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 이에 대해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UN의 중재가 실패하자, 터키계들은 북쪽에서 터키계 키프로스 연방이라는 것을 발족시켜버립니다. 아직 국가는 아니었으나, 자신들끼리 이러한 정치형태를 만들어버리고 UN은 그린라인만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이곳에는 평화유지군이 배치됩니다. 터키계 키프로스 연방은 자신들의 영역과 땅, 사람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주권만 가지게 된다면 국가가 되기에 국가임을 선포해버립니다. 주권을 가져서 완벽한 국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1983년에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킵니다. 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만들어버리자, 남쪽에서는 남북대화를 하고 통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터키군을 철군시켜버리자는 제안을 하지만 북키프로스에서는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린라인 주변에서는 산발적으로 폭동이 일어납니다. 산발적으로 폭동이 일어나는 것과는 별개로 남키프로스 지역은 자신들끼리 잘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그중 하나가 EU 가입이었습니다. 더 큰 시장에 가입하여 본인들의 파이를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1990년대에 들며 EU 가입을 열심히 논의합니다.

UN의 아난 플랜

이 상황을 알고 있는 UN에서는 이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 아난 플랜이라는 것을 가동하는데, 당시 UN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의 이름을 따서 가져온 것입니다. 코피 아난이 어떤 당근을 던졌냐면, EU 동시 가입을 제안하고 이를 전제로 통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합니다. 연방제 국가로 통일하려고 UN에서 시도했으나, 남키프로스에서는 이에 대해 국민투표에서 부결이 되고 북키프로스에서는 찬성이 나와 무산되었습니다. 북키프로스의 입장에서는 남키프로스만 EU에 들어간다면 본인들의 경제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염려했습니다. 또 염려되는 것은 터키가 EU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터키와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남키프로스에서 입장에서는, 북키프로스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한 정부이지만, 자신들은 유일한 합법적 정부이기에 저들과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터키군이 아직 철군하지 않았다는 안보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EU의 가입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진행해왔기 때문에 금방 가능할 것을 알았기에 동시 가입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2000년대 중반에 아난 플랜이 실패하게 됩니다. 남쪽의 키프로스 공화국은 2004년에 EU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2008년에는 유로존에 들어갑니다. 유로존에 들어가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일한 화폐를 쓰게 되며 관광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2012년에는 경제 위기가 와서 베일 아웃을 하기도 했지만, 남쪽의 키프로스 공화국은 유럽체제와 함께 가는 곳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북키프로스는 여전히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쪽과 북쪽이 떨어져서 계속 동일하게 남쪽은 EU 체제로, 북쪽은 터키와 친한 상태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있습니다. 키프로스와 터키 남부 사이에 천연가스를 발견합니다. 이 해역에서 발견했는데 터키에서는 자신들이 가서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키프로스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유일한 정부이고 이 해역을 관리해야 하므로 상의 없이 채굴한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이는 큰 경제적 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터키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북키프로스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남키프로스 쪽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 지속됩니다. 서로 싸움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와중에 통합에 대한 논의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니코시아라는 중앙부 국경 지역의 도시에서 상징적으로 북쪽 남쪽 사람들이 도로를 건너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2016년에는 남북 수장이 평화협정을 하던 와중에 함께 신년사를 하기도 하는 상징적이긴 하나 의미 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2018년에 버퍼 존 사이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길을 개설하고 그 수를 늘리고 있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언제부터 함께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영영 떨어져 살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어있고 그런데도 서로 으르렁대며 통일에 대한 염원도 함께하고 있는 곳이 키프로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