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들이 사분오열 시킨 조지아
흑해와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동서 교통로 한가운데 위치한 조지아. 고대 수메르 바빌론 문명이 북쪽 흑해 연안 쪽으로 확산되는 통로에 위치한 조지아. 이런 조지아의 지리적 위치상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조지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카르트 벨리라고 부르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조지아인의 땅을 사카르트벨로라고 부릅니다. 사실 조지아 인의 역사는 백인의 역사하고 기회를 같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백인을 영어로 하면 코카서스인 이죠. 캅카스 인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조지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기원전 12세기경 원조 지아인들이 이곳에 살았고 이 사람들이 혼혈이 되고 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하면서 독자적인 왕국을 만들어갑니다. 대략 기원전 8세기경 조지아의 서쪽에서는 콜키스 왕국이 만들어지고 동쪽에서는 이베리아 왕국이 등장합니다. 특히 동쪽에 이베리아 왕국은 그때 아주 큰 왕국을 형성했고 동부 조지아 사람들은 그 이후에 카르 틀리 왕국이라고 하는 왕국을 만들어냅니다.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던 조지아
조지아는 역사적으로 여러 강대국의 각축장이 됩니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다리우스의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을 받았고 또 서쪽은 알렉산드로 대왕의 침입을 받고 그리스 지배권으로 들어갑니다. 2세기경에는 아르메니아의 침입도 받고 그 뒤에는 로마의 지배로 들어갑니다. 이후는 비잔틴 제국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그다음에 6세기 기원후 6세기 중반에는 조지아가 둘로 나누어집니다. 동쪽 조지아는 페르시아 영역으로 서쪽 조지아는 동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갑니다. 완전히 동부와 서부가 다른 이질적 공간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6세기 중후반 이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캅카스 저지대 회랑을 차지하기 위해서 20년 동안 전쟁을 합니다. 전쟁 속에서 조지아 인들의 상처는 아픔은 시작이 됩니다. 동서 분열의 아픔이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9세기경 조지아에서 서쪽 조지아와 동쪽 조지아 중간 언저리에 조지아 왕국이 등장하고 조지아 왕국에 특히 다비드 2세가 왕권을 강화하면서 조지아의 영토를 늘립니다. 그리고 1184년경 타마르 여왕은 조지아 영역을 완전히 넓혀서 지금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까지 조지아 영토를 확대하면서 조지아 왕국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캅카스의 위쪽에 있는 러시아 남부의 스텝 초원 평야가 다 그렇듯이 1220년대 몽골의 침입을 받고 조지아 왕국도 역사에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몽골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15세기 말 조지아에는 3개의 왕조와 많은 공국이 등장합니다. 그 과정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는 이 조지아에 있는 세 개의 왕조와 수많은 공국을 자기들의 영역으로 두려고 싸움하고 조약을 해서 서부 조지아와 동부 조지아를 사이좋게 나눕니다. 그래서 동쪽 조지아는 페르시아의 품으로 서쪽 조지아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페르시아는 이 동서로 나누어진 조지아를 서로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충돌을 합니다. 그러다가 조지아의 동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페르시아, 조지아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오스만 제국이 서로 싸우는 과정에 러시아가 내려옵니다.
러시아의 침략
카스피해 연안과 흑해 연안에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내려옵니다. 사실은 러시아가 내려오니까 조지아에 살고 있었던 기독교를 믿고 있는 조지아 인들은 좋았습니다. 그렇지않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페르시아 오스만은 다 이슬람인데 같은 기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오니 저 사람들이 오면 우리는 그래도 이슬람 제국들보다는 낫지 않겠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여러분 교재에도 있습니다마는 카케 티 공국에 러시아가 어떤 제안을 하느냐 당신들 우리 품으로 와라. 우리가 당신들을 보호해 주겠다 당신들의 큰 형님이 되어주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캅카스 아래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캅카스 아래쪽으로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1800년대 캅카스 전쟁 이후입니다. 그렇지만 러시아는 캅카스 산맥 아래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당시 동쪽 조지아에 위치해 있었던 카르 틀리 공국 하고 카케 티 공국이 서로 연합 왕조를 형성합니다. 연합 왕조를 형성하고 있는 사이에 예카테리나 여제가 캅카스 아래쪽으로 남진을 하고 그리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상대로 해서 전쟁을 치릅니다. 당연히 조지아는 혼동 속으로 빠집니다. 그러다가 예카테리나 여제가 서쪽 조지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으로 내려오니까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의 왕조가 이러다가 이게 러시아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전쟁하니까 페르시아가 자기들 왕국을 침입할 것 같아서 실제로 카르 틀리-카케 티 국왕 왕조인 에레클레 2세는 러시아한테 SOS를 취합니다. 그런데 예카테리나 여제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당신들에게 땅을 헌납할 용의가 있소. 러시아에 땅을 헌납할 용의가 있소. 대신에 우리의 왕조의 존속과 왕위 계승권을 보장하면 우리는 당신들 예카테리나 여제의 품속으로 우리는 들어갈 용의가 있소. 군대도 주둔시켜도 되오. 이런 제의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 왕국이 과거에 잃어버렸던 오스만 트루크 제국에게 잃어버렸던 땅을 찾아주십시오.라고 하는데 러시아는 여기에 응대하지 않습니다.
왕국의 헌납
매몰차게 예카테리나 여제는 거절합니다. 그러다가 예카테리나 여제가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 왕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 왕국을 러시아 보호 아래에 두기로 한 것이 대략 1783년경입니다. 그래서 서조 지아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게 땅을 빼앗았고 동조 지아는 러시아 영향권 사실 러시아의 보호령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을 페르시아 제국이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787년에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 하고 러시아가 전쟁을 벌입니다. 당시 예카테리나 여제가 조지아의 주둔하고 있었던 군대를 빼서 발칸 반도에 투입합니다. 조지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대가 발칸으로 가니까 이때라고 좋아하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페르시아였습니다. 페르시아가 1795년에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 왕국의 수도인 트빌리시를 침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로 많은 탄압을 조지아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조지아 사람들은 이슬람 제국 페르시아 안 되겠다. 우리 형제국이나 다름없는 러시아에게 다시 보호를 취하자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 1798년에 연합 왕조의 왕이 된 기오르기 2세가 형제들 간의 왕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하다가 밀리니까 러시아 왕국에게 카르 틀리-카케 티 왕국을 헌납합니다. 자신의 왕이 그다음에 자신의 후손들이 계속 연합 왕국의 왕이 된다라고 하는 계승권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기오르기 2세 왕은 자기 왕족을 러시아에게 그냥 바친 것입니다. 정말 왕국의 헌납이 일어난 것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카르 틀리-카케 티 연합 왕국의 귀족들 상류계층들도 페르시아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몸서리를 치지 않았겠습니까? 무슬림의 국가가 아닌 기독교 국가로 합치자. 그리고 보호를 받자. 그렇게 해서 이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제 왕국 헌납을 받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아들 파벨 황제가 카르 틀리-카케 티를 러시아로 합병하면서 동조 지아는 러시아 땅이 됩니다. 그 이후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서조 지아도 러시아가 지배하면서 이제 트랜스 캅카스 지금의 조지아에서 러시아 영향권은 확고해집니다. 그리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조지아는 완전히 USSR 구성원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 USSR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약간의 시간이 있습니다. 1917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니까 여기에는 조지아는 독일의 지원을 받아서 조지아 공화국을 선포하는데 그러면서 이제 러시아로 지배했었던 대략 한 117년의 피지배 생활이 끝납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 대전 끝에 독일이 조지아에서 철수하면서 조지아는 다시 러시아 땅이 되고 소비에트 정권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이제 구소련의 일원으로 쭉 이어져 옵니다.
조지아 연방
구소련 시절에 조지아는 개별적인 작은 공화국들 민족별로 오세티야 공화국 위쪽에는 아파지아 공화국 터키 아래쪽은 아자니아 공화국 이런 소수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해서 조지아 연방이 만들어집니다. 그 연방이 USSR로 들어간 것이죠. 그러면서 USSR 때 조지아 연방에서는 당시 USSR 정부가 자기들 마음대로 조지아 땅을 국가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이를테면 흑해 연안 바투미 지방의 일부 땅은 터키에게 줘 버리고 또 아래쪽 로레 지방은 아르메니아를 줘 버리고 또 동쪽에 헤레 티라는 지방을 아제르바이잔에 줘 버리고 2014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소치는 흑해의 북서쪽 해안 지방은 이쪽은 또 러시아에게 줘 버리고 당시 USSR이 이 조지아에 여러 종교를 매개로 나누어져 있던 소수 민족들을 적당하게 나누면서 조지아 영토를 분할, 재단시킵니다. 그러면서 USSR은 조지아에 대한 지배와 영향권을 강화합니다.
'발칸반도, 러시아 분쟁, 분리독립, 소련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프로스의 위치적 특성과 분단 과정(아프로디테의 섬) (0) | 2022.07.27 |
---|---|
통일 국가 오세티아를 염원하는 오세티아인 (0) | 2022.07.26 |
발칸반도 내의 다양한 민족과 종교 분포로 인한 갈등 (0) | 2022.07.26 |
스폐인의 역사 - 780년간 이슬람 왕국의 지배를 종식시킨 재정복 운동 (0) | 2022.07.26 |
'거대한 체스판' 한복판에 놓인 조지아의 지리적 숙명 (0) | 2022.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