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러시아 분쟁, 분리독립, 소련 역사

키프로스의 위치적 특성과 분단 과정(아프로디테의 섬)

게임블루 2022. 7. 27. 07:03

키프로스의 위치적 특성과 분단 과정(아프로디테의 섬)

키프로스의 위치적 특성과 분단 과정(아프로디테의 섬)
키프로스의 위치적 특성과 분단 과정(아프로디테의 섬)

키프로스라고 불리는 섬나라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키프로스 혹은 사이프러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섬은 지중해에 위치해있습니다. 키프로스에는 예쁜 전설들이 많습니다. 비너스라고 많이 알고 있는, 혹은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곳이 바로 키프로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마의 안토니오 장군이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준 섬이 바로 키프로스라는 낭만적인 전설이 함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중해의 섬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설과는 달리, 키프로스는 현재 우리나라처럼 반으로 쪼개져 있는 국가입니다. 남쪽에는 그리스계가, 북쪽에는 터키계가 많이 살고 있으며 이 사이는 UN이 국경을 관리하는 체제로 분단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아름다운 섬인데, 둘로 쪼개진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분단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샤라는 도시입니다. 지중해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휴양을 하러 가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키프로스는 분단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유럽 사람이 휴양을 하러 찾던 섬이었기에 휴양지가 많이 건설되어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단이 되며 접경 지역에 있었던 바로 샤라는 도시는 민통선과 마찬가지로 민간인 통제구역과 같은 구역에 끼어버리게 됩니다. 바 로샤는 터키 영역에 들어가 있는데,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채로 40여 년이 넘게 폐허로 남게 됩니다. 폐허로 남게 되며 두 가지의 일이 벌어집니다. 한 가지는 생태계 복원이라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아프 로스에만 살고 있던 동물, 식물이 있었는데 휴양도시를 개발하며 이들이 많이 사라졌었으나, 이 동식물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며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DMZ도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보고로 주목받기도 합니다. 또 하나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터키계의 영토로 들어가 있는데, 이곳에 기존에 있던 호텔이나 식당 등에 투자를 한 사람의 다수는 그리스계입니다.

그리스계 vs 터키계

그리스계는 이미 터키계와 사이도 좋지 않은데,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이에 대한 불만이 매우 많은 상태입니다. 바 로샤는 분단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작은 섬에서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왜 영영 서로 함께 살 수 없을 것처럼 대립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키프로스 위치를 보시면 지중해이기에 유럽과 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키프로스는 지중해의 동부 끝에 있습니다. 터키 남부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 동부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리스 동부와도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보다는 터키, 그리고 더 동쪽에 있는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위치성을 본다면 중동지역에서 유럽 혹은 중동지역에서 아프리카로 나가는 데에 굉장히 유리한 지역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수많은 제국이 키프로스를 자기네 품으로 안아 오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현재 키프로스를 보시면, 남쪽에 있는 국제사회에서 승인받은 유일한 국가인 키프로스 공화국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계가 굉장히 많이 살고 있습니다. 면적으로 봤을 때도, 60%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여 북쪽보다 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쪽에는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이 있습니다.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승인 국가입니다. UN이 우리나라처럼 국경을 관리하고 있는데, 완충 지역, 그린라인으로 부르는 이 지역이 전체 지역의 3% 조금 안 되는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키프로스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하며 조건에 영국이 군사기지를 놓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영국의 군사기지도 전체의 3%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프로스는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키프로스라는 섬에서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키프로스 공화국이 문서상으로 보았을 때는 이 섬 전체와 해역에 대한 주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키프로스 공화국은 그리스계인 이 주가 되고 그리스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은 터키어를 모국어로 하는 터키계가 많이 살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그리스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키프로스의 위치와 유입

고대 키프로스는 위치상으로 보았을 때도 아시아와 중동지역과 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아시아라고 보이는 곳에서 인구가 계속해서 유입되었습니다. 고대에 그리스에서도 문명이 발달하면서 미케네 문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여기저기 식민지를 개척하러 다녔습니다. 그리스는 항해의 문화가 많이 발달했던 고대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배를 타고 와서 키프로스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당시, 그리스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그리스인들이 많이 살 게 되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리스의 성향을 가진 섬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리스인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섬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럽과 중동지역, 아프리카를 연결해주는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지배 국가가 여기저기서 이곳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때 당시 힘이 센 국가들이 키프로스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고대에는 페니키아, 이집트 로마 등등이 이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주민은 그리스계가 다수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스계가 다수인 키프로스 섬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 또한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자 할 때 키프로스를 중요한 요충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으로 이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때가 16세기 후반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계였습니다. 지배 세력은 투르크인,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리스계로 된 것입니다. 지배 세력이 이슬람교를 믿는 투르크인들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다시 투르크 인들을 하나둘씩 끌고 들어옵니다. 투르크 인들이 점점 들어오기는 하나, 그리스계가 다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곳을 지배하면서 그리스계를 강압적으로 누르진 않습니다. 당신들은 그리스 정교를 믿는 그리스인들이고, 당신들의 종교를 마음껏 가질 수 있지만, 세금을 더 내라는 '밀레트 제도'를 시행합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 주되, 납세에 있어서 더 많은 금액을 부과하는 형태로 그리스인을 지배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그리스인들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지배계층이 투르크인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투르크계에 대해 반발을 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한때는 그리스까지 자리를 차지했지만, 1830년이 되며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여 나오게 됩니다. 그리스는 독립했지만, 키프로스는 독립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키프로스는 자신들의 모국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스가 독립했기 때문에, 우리도 독립을 할 수 있지 않냐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스 입장에서도 키프로스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이를 그리스의 땅으로 다시 가져와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터키와 유럽제국의 침략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위치적으로 봤을 때도 요충지에 있는 섬을 쉽게 놓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는 독립해서 나간 상태이지만 오스만제국은 키프로스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때, 키프로스에 눈독을 들이는, 점점 힘을 키워나가는 유럽 제국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영국은 키프로스를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합니다. 키프로스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바로 밑으로 내려가면 지금 많이 이용하는, 이집트에서 관리하는 수에즈 운하가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 땅에 있지만 이를 개발하고 공사를 진행했던 회사는 영국계 회사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수에즈 운하를 생각하고 디자인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를 실제로 수행해내지는 못합니다. 이 기회를 보고 들어간 국가가 영국입니다. 영국이 들어가서 운하를 만드는 일을 해냅니다. 그런 후 회사를 설립하여 운하를 관리하게 되는 것이 19세기입니다. 19세기 중후반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영국계 회사가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키프로스가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내려가 옆으로 간다면 인도가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를 향하는 항로를 확보하고 싶고, 수에즈 운하도 튼튼하게 보호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따라서 키프로스에 군함을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는 계산이 서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이 오스만 제국에 키프로스를 요구한다면 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임차에 대해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도 관리하고 인도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술탄이 우호적이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공동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위쪽에서 러시아가 내려오고 있는데 투르크 제국의 중심인 터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군력을 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군함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는 말로 술탄을 설득합니다. 결국 영국은 1878년에 키프로스를 임차해가고 군함을 배치하고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놓습니다. 19세기 말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었고, 군함도 가져다 놓은 상황에서 20세기가 넘어가게 되면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합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며 지역의 헤게모니가 바뀌는 큰 상황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오스만 제국은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이 자신과 다른 편에 선 것을 알게 된 순간 영국은 키프로스를 점령해버립니다. 이미 본인들의 군함과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점령이 가능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패전하게 됨으로써 키프로스를 잃게 됩니다. 키프로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로잔 조약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갔으나,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그리스인이 지배적이었으며 오스만 제국 시절 들어온 투르크 인들도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